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2004년 한국시리즈 (문단 편집) == 여담 == * 한국시리즈 MVP는 총 81표 중 68표를 득표한 [[현대 유니콘스]]의 수호신 '''[[조용준]]'''에게 돌아갔다. 조용준은 한국시리즈 9경기 중 7경기에 등판하여 12⅓이닝 2실점 비자책점 3세이브 평균자책점 제로의 철벽 투구를 선보이며 현대의 우승을 이끌었다.[* 이 당시 조용준의 위력이 [[오승환]] 저리가라 할 정도였다. 삼성 입장에서는 은퇴 직전까지 제대로 털지 못해 항상 [[삼나쌩 클럽|삼성에게 강한 선수들]] 중 TOP가 현대 유니콘스 투수였던 [[조용준]], [[미키 캘러웨이]]였다. 켈러웨이는 끝까지 1패도 못안기고 8승을 조공했다. 2005년 이 후로 조용준 본인 혼자 몸관리 못하고 [[블론세이브]]도 몇몇 터지더니 결국엔 10년도 못채우고 9시즌만에 은퇴를 하고 해설자로 활동하고 있다.] * 시즌 후에도 MVP와 신인왕 수상을 두고 삼성과 현대 선수들 간 ~~훈훈한~~ 경쟁이 벌어졌다. * 시즌 MVP를 두고 경쟁하던 [[배영수]]와 [[클리프 브룸바]] 중 4차전 때의 비공인 10이닝 노히트노런 등으로 명실상부한 삼성의 에이스로 등극한 [[배영수]]가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다. 브룸바는 외국인 최초로 타격왕과 골든글러브를 석권했다.[* 2015년 [[에릭 테임즈]]가 0.380으로 브룸바의 0.343 수치에서 0.037을 더 올렸다.] * 시즌 후반까지 신인왕 후보로 거론되며 경쟁을 펼쳤던 [[오주원|오재영]]과 [[권오준]] 중, 고졸 1년차에 한국시리즈에서 활약이 보다 빛났던 오재영이 신인왕으로 뽑혔다. 권오준은 당시 중고 신인이였다.[* 1999년도에 프로를 입단 했지만 부상과 군 복무로 인해 실질적으로 1군에 데뷔한 시즌은 2003년이다.] * 한국시리즈에서의 부진으로 체면을 구겼던 [[임창용]]은 해외진출을 타진했으나 실패, 결국 국내 잔류를 선택하면서 삼성으로 복귀했다. 이후 2년간 FA 18억원을 맺으나 2005년~2007년 성적은 처참했다. 결국에 이는 본인에게 흑역사 및 김응용 감독, 선동열 수석코치와는 말을 섞을 수도 없는 상태까지 갔다. 정말로 2007년 까지 뛰고 임의탈퇴를 받아 1년뒤 [[야쿠르트 스왈로즈]]로 입단해서 제 2의 전성기를 보냈다. 그리고 메이저리그까지 진출하고 2014년에 국내로 복귀에 전 소속이였던 삼성으로 복귀해 2년간 뛰다가 방출되어 2016년 [[KIA 타이거즈]]로 이적한다. 물론, 이것은 [[2015년 삼성 라이온즈 원정 도박 사건|불미스런 일]]로 본인이 자초한 일이었다. 거기서도 사고를 터트리며 아예 KBO에서 푸짐하게 까이고 있었으나 은퇴 후 [[김기태(1969)|이 분]]의 독박을 뒤집어 쓴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은퇴 후에도 사기죄를 저질러 방출을 재평가하게 만들었다.~~ * 한국시리즈 통산 10회 우승에 빛나는 [[김응용]] 감독의 마지막 한국시리즈이다. 11월 9일, 삼성의 김응용 감독이 계약 기간을 1년 남겨놓고 감독직에서 사임하면서 사장으로 승진, [[선동열]] 수석코치가 후임으로 선임되었다. * 11월 23일, 삼성이 [[KBO FA제도|FA]]로 공시된 [[심정수]]와 [[박진만]]을 ~~[[선동열]]의 취임선물로~~ 영입했다. [[심정수]]는 본인은 계속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정규시즌 후반부터 삼성 영입설이 떠돌았다. * 시리즈가 9차전에서 끝나면서 [[한국방송공사|KBS]]가 지난 [[1999년 한국시리즈]]이후 5년 만에 우승 장면을 중계하게 되었다. ~~SBS가 4년을 해먹었으니...~~ 한편 MBC는 당시 메이저리그 중계권을 얻은 대신 한국시리즈 중계권을 잃었기 때문에 [[1998년 한국시리즈]]를 마지막으로 시리즈를 마치는 중계를 할 수 없었다. ~~그런데 2005년에 중계권을 돌려받자마자 시리즈를 마쳤다.~~ * 역대 시리즈 중 최초로 SBS를 시작으로 [[HD]] 화질로 중계를 시작한 한국시리즈다. [[https://youtu.be/s64aL6vM1nQ|SBS의 당시 HD 워터마크가 표출된 6차전 보아의 시구 장면]] * 2003년 현대의 구단주였던 [[정몽헌]] 회장의 사망[* 박진만의 현대 유니콘스 활동 사진 항목을 보면 검은 리본이 메여 있는데 그것이 바로 고인을 추모하는 리본이였다.] 에과 이에 따른 '''[[현대전자|모기업]]'''의 내부 문제로 구단 지원이 줄어들면서 현대는 이적생 [[심정수]]는 커녕[* 프랜차이즈 선수가 아니였다. 2000년도 뛰던 [[심재학]]의 트레이드 맞상대 선수였는데 심정수의 [[선수협]] 활동하다가 찍혀서 현대로 온 것이다. 현대는 프랜차이즈 선수를 어느정도 우대해줬다. 대표적으로 캡틴 [[이숭용]], [[전준호(1969)|전준호]]가 있다. 전준호는 다만 전 소속인 롯데에서 뛰었으나 성적 기복이 심하고 연봉 문제로 갈등까지 빚으며 더 이상 롯데는 전준호를 [[아오안]] 취급해 버리며, 후임은 [[김대익|어느 고깃집 사장님]]을 선택하고 전준호를 현대로 트레이드시켰다.~~그리고 전준호와 그 고깃집 사장님은 2004년 한국시리즈에서 상대팀 선수로 만나게 되었다.~~] 반드시 잡고자 했던 프랜차이즈 스타 [[박진만]]마저 끝내 삼성에 내줄 수 밖에 없었다. 이미 삼성에서 탬퍼링이 있었지만 FA 첫 날 부터 삼성과 협상을 신속하게 했다. 현대는 삼성에서 보상 선수로 [[이정호(1982)|이정호]]를 뽑았다.[* 심정수의 경우에는 FA 직전 연봉이 쎘기 때문에 100% 보상금으로 받았고, 박진만의 경우에는 보상선수로 이정호를 뽑았다. 이정호는 한 때 대구-경북 지역 최고의 유망주로 삼성에 무려 계약금 5억 3000만원을 받고 입단하나, 부상 등으로 인해 별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다가 현대 이적 후에도 별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통산 1승만 올린 채 은퇴했다.] 2006년에는 모기업의 지원이 아예 끊기면서 결국 2007년을 끝으로 [[현대 유니콘스]]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린다. * 10년 후, [[2014년 한국시리즈]]에서는 2007년을 끝으로 해체된 현대 유니콘스의 선수단과 직원들을 거의 그대로 승계하여 창단한 넥센 히어로즈와 삼성 라이온즈가 한국시리즈에서 승부하게 됐다. 사실상의 리턴 매치. 삼성의 경우 임창용, 권오준, 배영수, 권혁, 안지만, 진갑용, 이정식, 강명구, 조동찬, 박석민, 박한이가 남았고 넥센은 오재영, 송신영, 이택근이 남았다. 다만 다른 팀 소속으로 박진만(SK), 김수경(고양), 이상열(LG), 이대환(NC,신고선수) 등이 현역으로 활동 중이였다. 2004년 KS를 경험한 현대 선수들 중 2014년 넥센 소속으로 KS에 출장한 선수는 오재영과 이택근뿐이었지만 삼성은 위의 출전 선수들 중 강명구, 권오준, 이정식을 뺀 선수들이 출전하였다. 2014년 한국시리즈에서는 삼성이 웃게 된다. ~~그리고 10년 전, 현대 프런트로 일하면서 우승 축하연을 준비하면서 눈물을 흘렸던 염경엽은 준우승팀 감독으로 또 울었다.~~ * 전 [[태평양 돌핀스]], [[현대 유니콘스]] 선수이자 당시 프런트 과장이던 '''[[염경엽]]'''이 우승 축하연을 준비하기 위해 정장 차림으로 비 속을 뚫고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롯데호텔 월드]]로 달려가서 준비했다고 한다. 다만, 준비하는 도중 "(현장에 있어야 하는데)내가 지금 뭘하고 있는거지?"라며 돌아서서 눈물을 흘렸다고. [[http://sports.mk.co.kr/view.php?no=1389195&year=2014|회고 1]]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arcid=0008825908&code=41161111&cp=du|회고 2]] [[http://isplus.liv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6330466&cloc=|회고 3]] [[http://news.donga.com/3/all/20141104/67662504/1|회고 4]] * 현대는 정규시즌 1위를 했지만 시리즈 규정상 마지막 차전은 원정팀 유니폼으로 입고 우승을 했다. 당시 우승멤버 중 2020 시즌 종료 시점 현역 선수는 [[오주원]] 뿐이며 당시 오주원은 고졸 신인이었다. 이후 현대의 해산으로 남은 인적 자원을 이어받은 [[키움 히어로즈]] 최후의 현대 출신 현역 선수이기도 하다. * 이 시리즈 후 프로야구는 [[삼성 라이온즈]], [[SK 와이번스]], [[KIA 타이거즈]], [[두산 베어스]]가 2019년까지 우승을 독식했다.[* 사실 우승을 독식한 건 현대도 마찬가지라서 1999년 [[한화 이글스]]의 우승 이후로 2019년까지 한국시리즈 우승 경험이 있는 구단은 현대, 두산, 삼성, SK, KIA까지 5개뿐이였다.]이 중 삼성, SK, 두산은 2년 연속 우승을 했고 2010년대에 들어 삼성은 4년 연속 우승을 했다. 저 중 2009년, 2017년에 우승한 기아만 2년 연속 우승을 못했으나, 전신인 [[해태 타이거즈]]까지 포함하면 2년 연속 우승은 물론이고 4년 연속 우승도 한 적 있다. 그게 1980~1990년대라 이 시리즈 전이기는 하지만. 이 기록은 무려 16년 뒤인 2020년 [[NC 다이노스]]가 우승을 하며 깨졌다[* 20년전을 돌려보면 롯데랑 LG는 2000년대 한국시리즈 진출이 없다. [[2002년 한국시리즈]] 경험이 있는 LG가 그 예외 나머지 구단들은 한번이라도 경험이 있다~~그 한화는 [[5886899678|이것]]을 찍기 전에 [[2006년 한국시리즈]] 올라갔었다.~~] * 2021년 시즌 말 [[오주원|오주원(오재영)]]이 은퇴를 선언해 현역 선수는 [[박석민]] 혼자 남게 되었다. 4차전에서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 [[배영수]]는 2019년까지 현역으로 있었고 두산 소속으로 [[2019년 한국시리즈]]의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으며 이 때의 아쉬움을 약간이나마 털어냈고 은퇴를 선언했다. [[권오준]]과 [[권혁]], [[이택근]]은 2020년 나란히 은퇴를 선언했고 특히 권오준은 은퇴할 때 까지 삼성 소속으로 남은 유일한 선수가 되었다. 그리고 이 한국시리즈는 현역이 존재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시리즈이기도 하다. * 현대의 최전성기를 이끈 [[김재박]] 감독의 통산 네번째 우승이자 마지막 한국시리즈 우승이다. 이 이후로 김재박 감독은 감독 커리어가 완전히 꺾이게 되는데, 2005년에는 7위[* [[KIA 타이거즈]]가 8위를 차지하지 않았으면 꼴지까지 떨어질 뻔했다.]로 떨어지게 되고 2006년 정규시즌 2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만 한화에게 져 [[KBO 플레이오프/2006년|2006년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게 된다. 이후 도하 아시안 게임 대표팀 감독을 맡아 [[도하 참사]]의 장본인이라는 오명을 쓰게 되고, LG 감독 시절에는 자신이 남긴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라는 희대의 명언을 몸소 증명하며 커리어를 쓸쓸하게 마감하게 된다. *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나 현대의 우승까지 [[2004년 한국시리즈/9차전|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처리하는 장면]]을 [[2021년 한국시리즈|17년 후의 한국시리즈]]에서 수원으로 연고지를 쓰고있는 [[kt wiz]]가 그대로 재연하면서 우승을 했는데 마지막 경기 승리팀이 8점인 것도 똑같고 상대팀의 마지막 타자가 좌타자인 것도 동일하며 심지어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처리하는 타구가 1루쪽 땅볼인 것도 똑같다. --그냥 우연일뿐-- * 3차전 하일성이 전달히기로는 삼성 선수들이 현대 선수들의 저력을 보고 "정말 징그럽다고, 도망가면 좁혀오고 도망가면 좁혀오고"라고 말했는데 2차전 삼성이 8점을 내면서 2차전은 복수에 성공하는듯 했으나 바로 현대도 8점을 뽑아내면서 결국 무승부가 되었고 9차전까지 가는 끝에 삼성은 우승의 문턱에서 내려와야만 했다. * 이 시리즈부터 우승 엠블럼에 우승횟수만큼 별모양을 삽입하기 시작했다. [[1982년 한국시리즈]]와 [[1991년 한국시리즈]] 우승 엠블럼에도 별이 그려져 있긴 하지만 우승횟수와는 관계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